특이한 이 이름은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있지만) 울긋불긋한 꽃이 피는 모양이 광대를 연상시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잎은 나물과 국으로 식용할 수 있고, 통증 완화나 해독에 효과가 있으며, 지혈제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려주었어요. '이렇게 매력적이고 실용적인 풀꽃이 우리 집 뒷마당에 절로 찾아왔다고?' 저는 낯설지만 매력적이고, 쓸모까지 넘치는 광대나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심지어 '봄맞이'라는 꽃말까지도 마음에 쏙 들었어요. 아직은 꿀을 딸 꽃이 없어 마당을 헤매던 벌들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작고 길쭉한 보랏빛 꽃에 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고것은 왜 안 뽑아?”
지나는 길에 저희 집 마당에 들르신 앞집 할머니였습니다. 작가님도 아시지요? 마을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어르신이자 제 농사 선생님이요.
“아……. 그냥요. 예쁘잖아요.”
“아이고, 뽑아야 돼야. 가만 두믄 이리저리 퍼지기만 허구, 안 돼야. 내가 뽑아주까?”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광대나물을 몽땅 뽑아버리실 것 같았어요.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이것만 찍고 뽑을게요.”
저는 할머니 손을 잡고 담장에서 벗어나 얼른 화제를 전환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그 광대나물을 뽑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가시는 뒷모습을 확인한 뒤엔, 벌들의 환대를 받는 광대나물을 영상(릴스)으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고요. 그땐 몰랐습니다, 그것이 보랏빛 고통의 서막이었다는 것을요.
광대나물은 담장을 따라 쭉 퍼지더니, 이내 텃밭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텃밭을 보랏빛으로 만들었어요.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자 텃밭을 벗어나 뒷마당과 앞마당을 뒤덮기 시작했고요. 그때부턴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수풀집 곳곳에 광대나물이 가득했습니다. 봄에는 감자순보다 광대나물의 키가 더 컸고, 여름엔 토마토와 상추 뿌리 옆에 착 달라붙어 양분을 빼앗았어요. 할머니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요. 마을 어르신들은 제초제를 한 번 뿌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저뿐 아니라 마당을 오가는 동물친구들에게 독성을 끼치는 약품이라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작은 기대는 있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잡초도 제철이 있어서 어느 때가 지나면 기운이 쇠하더라고요. 놀랍게도 광대나물은 달랐습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될 때까지 기세가 여전했어요. 심지어 새하얀 눈 속에서도 보랏빛 꽃을 피워, 눈이 녹으면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으니까요(이 때는 약간 공포를 느꼈습니다). 놀라운 생존력이죠?
포털사이트에 '광대나물'을 다시 검색하니 이른 봄에 보지 못했던 몇 가지 특징이 더 있었습니다. 광대나물의 씨는 싹이 잘 트고 오래 생존하며 바람, 비, 동물을 통해 퍼져나가는데*, 씨앗은 땅속에서 최대 5년간 생존하며 발아할 기회를 엿본다고 합니다. 게다가 벌이 찾아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가수정을 통해 생존*할 수가 있다네요.
5년…… 5년이나요? 그리고 벌이 찾아오지 않아도 씨앗을 만들 수 있다고요? 광대나물을 살려 주기로(?) 했던 그날은 대체 왜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광대나물과의 사투는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면, 그래도 뽑고 또 뽑은 덕분에 올핸 작년보다 상황이 한결 낫습니다.
(*출처 : 순서대로 *위키백과, *자닮/잡초도감)
이 사건을 계기로 저는 반잡초파로 전향했습니다. 들풀의 생명력을 경외하고 들꽃의 소박함을 애정하며 그들이 잡초라 불리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수풀집 담장 안에는 들이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텃밭의 작물과 화단의 꽃을 위한 조치입니다.
오늘 작가님께 편지를 쓰며, 인터넷 사전에 '잡초'를 검색해 봤습니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로 농작물이 자라는데 해가 되기도 한다, 고 쓰여 있었어요. 읽고 보니 잡초가 아니라 제 맘 속 불안에 대한 설명 같기도 합니다. 기쁨과 감사 같은 것은 농작물과 같아서 저절로 나고 자라지 않는데, 불안은 잡초처럼 끊임없이 자라더라고요. 특히 프리랜서로 살기로 결정한 후에는 크고 작은 불안이 더 자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수풀집에 싹을 틔운 한 포기 광대나물처럼, 어디선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으로 매력을 뽐내다가, 어느덧 마음밭을 점령해 버리는 걸 느껴요. 불안에 너무나도 취약한 저는, 그걸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7월의 텃밭에서 여전히 기세등등한 광대나물을 뽑으며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런 불안이 찾아오면 뿌리내리기 전에 얼른 뽑아내야겠다고요.
지난 편지에 작가님은 스스로를 잡초 뽑기에 성의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지만, 작가님 방식대로 건강하게 텃밭 생활을 즐기는 농부로 보여요. 또 불안을 잘 다스리며 7년 차가 된 멋진 프리랜서 선배님으로도 보입니다.
작가님의 텃밭과 마음밭엔 광대나물 같은 녀석은 얼씬도 않길 바라요. 그렇지만 아주 혹시라도 찾아든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특허 제초호미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마음밭에 찾아든 잡초 같은 불안은 계절편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뽑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텃밭에 나란히 앉아 품앗이하듯이요.
2023년 7월 12일
반잡초파 김미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