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여기 수풀집에 다녀가신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그때만 해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전기장판을 깔아 두고 작가님을 맞이했는데요. 이제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는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들기는데도 땀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카펫 위에 눕기를 좋아하는 소망이가 맨바닥을 찾아 철퍼덕 눕더니 제 눈을 응시하며 크게 울었습니다. “냐아아아아~” 하고요. 해석컨데 “덥다아아아~” 였을 거예요. 털복숭이 친구가 덥다는데 어쩔 수 없지, 하며 소망이를 핑계 삼아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가동했습니다.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절기, 하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다는 의미겠죠?
하지를 앞두었던 작년 이맘때, 첫 편지의 제목을 정하느라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편지는 한 줄도 못 쓰고 빈 화면을 바라보며 ‘귀찮 작가님께’, ‘윤수 작가님께’, ‘친애하는 작가님께’ 등등을 쓰고 지우느라 진을 뺐더랬죠. 고르고 고르다 <윤수에게>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컴퓨터 화면을 열자마자 망설임도 없이 <다시, 윤수에게>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일 년 전의 제가 이미 정해 놓은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한 해를 돌아 다시 맞는 6월입니다. 모내기를 마친 논들이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보송보송한 밤꽃도 뽀얗게 피었습니다. 산책길엔 빨갛게 익어가는 자두 열매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도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마을 어르신들이 자두 좀 따다 먹게나, 하고 부르실 테죠. 대문 밖만큼은 아니지만 수풀집 마당도 제법 소란해졌습니다. 제철을 맞은 작물들이 텃밭에 와글와글하거든요. 덕분에 저는 작가님이 지어주신 별명 ‘당근재벌’에 걸맞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상추재벌’, ‘치커리재벌’로도 등극했습니다. 앞으로 ‘고추재벌’, ‘가지재벌’, ‘토마토재벌’도 되어보려고요. 반면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희망하지 않았음에도 강제로 재벌이 되어버린 분야가 있다는 거예요. 바로 잡초…… 어쩌다 보니 ‘잡초 재벌’도 되어버렸어요. 생명력 넘치는 여름이 텃밭의 작물과 열매들만 골라서 키우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꽃구경과 탐조에 힘쓰는 사이, 안 그래도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가진 잡초들이 여름의 기운을 등에 업고 온 마당을 장악해 버렸어요. 요샌 자고 일어나면 잡초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있어서 아침마다 초조한 마음으로 창가를 서성거리게 됩니다. 돌보는 이가 없는 땅, 햇빛 충만한 6월의 이 날씨…… 이 조건을 흥청망청 누리는 잡초들이 한둘은 아니지만, 지금 딱 하나의 이름만 대라면 이 이름을 말해야 할 것 같아요. 환장이!
요새 수풀집 마당을 호령하는 존재는 ‘환장이’입니다. 율초라고도 불리는 이 잡초는 이른 봄부터 싹을 틔웁니다. 그런데 이 싹이 무척 작고 여려요. 반잡초파로서 모든 잡초는 초장에 제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가녀리고 바싹 마른 싹이 이른 봄의 척박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또 너무 여린 싹은 조금 큰 뒤에 뽑아야 뿌리까지 끊기지 않고 깔끔하게 뽑힌다는 나름의 잡초철학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그래야 그 사이에 좀 더 빈둥거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수풀집 돌담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였더라고요. ‘어? 지난주까진 안 저랬는데…’ 이상하다 싶어 얼른 뛰어 나갔습니다. 돌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담쟁이덩굴은 아니었어요. 비슷하긴 했지만 담쟁이덩굴 잎에 있는 광택이 없고 잎의 모양도 조금 달랐습니다. 대신 잎의 양면에 거친 털이, 줄기와 잎자루에는 뾰족한 가시가 나 있었어요. 그 가시와 털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타고 올라가는데도 쓰이지만, 자신을 해하는 상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무기가 되기도 하더군요. 날카로운 가시와 뾰족한 털로 상대를 할퀴어 쓰라린 상처를 남기죠.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요……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알게 되었습니다. 텃밭부터 돌담까지가 온통 풀로 뒤덮인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거든요. 급히 잠옷 차림으로 덩굴을 치우겠다고 달려들었다가 팔뚝과 종아리를 잔뜩 긁혔습니다. 피부 위에 빨간 오선지가 그려진 것 같았어요. 상처가 아무는 내내 무척 가려웠고요. 정말 환장할 노릇이죠?
네, 사실 환장이는 제가 붙인 별명이에요. 이 풀의 본래 이름은 ‘환삼덩굴’입니다. 가시와 털에 호되게 당하고 난 뒤 네이버 렌즈의 도움을 받아 통성명을 했는데요. 이름을 안 뒤에도 이름이 영 입에 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못마땅한 마음을 가득 담아 ‘환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이름 모를 싹의 정체를 알아봤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이름에 ‘덩굴’이 들어간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기를 쓰고 뽑아냈을 테니까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덩굴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줄기만 조금 잘라낸 후 어떻게 버텨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토마토와 고추를 향해 진격하는 환장이를 보니… 그럴 수는 없겠더라고요. 무더운 날씨였지만 긴팔 티셔츠 위에 셔츠를 겹쳐 입고 두께감 있는 긴바지도 꺼내 입었어요. 소매단은 장갑 속에, 바짓단은 목이 긴 양말 속에 야무지게 넣어 입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매서운 가시와 털에 더는 긁히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작업복장이었어요. 작업목표는 낫으로 덩굴의 줄기를 조각내 당기되, 지면의 시작점을 반드시 찾아내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딸기 따다가 먹구 혀. 여 우리 밭에 딸기 많이 열렸은게.”
동네 어르신들은 항상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서 바로 본론부터 꺼내시지 않나요? 예전의 저라면 까무러치듯 놀랐을 테지만 이제는 태연스레 답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거 마무리만 하고 금방 건너갈게요.”
“풀 뽑나 부네.”
“오늘 저~ 기부터 여기까지 까시풀 정리했어요. 다 했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 밑에 찌끄만해서 뽑히지도 않는 풀이 또 잔뜩 숨겨져 있는 거 있죠? 둘 다 작년에는 없던 풀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르신은 마당 바닥에 널려 있던 호미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앉으시더니 풀을 매기 시작했어요. 저는 뒤늦게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휴, 하지 마세요. 여태 밭일하고 오셨을 거 아녜요. 제가 이따 할게요, 이리 주세요. 이제 딸기 따러 가요.”
어르신은 괜찮다는 듯 호미가 없는 손을 훠이훠이 흔들며 말씀하셨어요.
“이 풀은 호맹이 옆구리로 이렇게 득득 긁는겨. 자네처럼 하믄 뿌리가 약혀서 그냥 끊겨. 그람 또 나지.”
능숙한 어르신의 손놀림을 따라 해봤지만 어르신과 달리 뿌리가 똑 끊겨버렸어요.
“저도 이제 마당에 나는 왠간한 풀은 다 알거든요, 근데 요샌 이상하게 전에 못 봤던 풀들이 자꾸 생겨요.”
궁금했어요. 계절마다 수풀집 마당에 나는 잡초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빠짐없이 알아두었는데, 왜 자꾸만 새로운 잡초가 이렇게 창궐하는지 말이에요. 산책길에서 새로운 풀씨를 묻혀 온 걸까요? 아니면 잡초들의 식생이 바뀐 걸까요? 그런데 맞은편에서 호미질을 하시던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넘이 흥하면 저 넘이 쇠하고, 저 넘이 쇠하면 또 딴 넘이 흥하고 그랴. 그러는 것이 이치잖여.”
노엽거나 낙담한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르니께 나는 그냥 뽑아야지. 노상 뽑아야지, 뽑아서 없애야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걸 말하는 것 마냥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어요. 자연에, 사는 일에 순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님, 저는 여기 금산의 작은 집을 돌보며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어느 날은 기뻐하고 어느 날은 슬퍼하면서요. 기대하고 또 실망하면서요. 그 모든 일들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하지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지는 날들도 있어요. 불안이 찾아올 때요. 뾰족한 가시와 거친 털을 잔뜩 품은 불안 덩굴이 일상을 모두 뒤덮어버린 날들 말이죠.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로, 농작물이 자라는데 해가 되기도 한다.> 잡초에 대한 이 설명이 제 마음속 불안에 대한 설명처럼 느껴진다던 제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직장인 시절에는 시간이 없다는 게 제 불안이었어요. 경제적으로는 점차 안정되어 가도 내가 나를 돌볼 시간이 없다는 게, 그래서 정작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게요. 그런데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도 경제적 안정이 없다는 게, 실패로부터의 안전망이 없다는 게 불안이 되더라고요. 퇴사 2년 차가 된 요새는 새로운 불안이 생겼어요. 때에 따라 어떤 조직에 속하기도 하고, 조직 밖 개인으로 일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회사원도, 완전한 프리랜서도 아닌 채 중간 지점에서 영영 헤매게 될까 두려워요. 결국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안정도 완전히 갖지 못하고 애매하게 살면 어쩌나 싶은 불안이죠.
“이 놈이 흥하면 저 놈이 쇠하고, 저 놈이 쇠하면 또 딴 놈이 흥하고 그런다”는 어르신 말씀처럼, 어떤 불안이 해소되면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 생기는 게 삶의 이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땅이 있으면 풀이 생기는 것처럼 삶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먹고 있는 한 불안도 존재할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당연한 감정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방치해 왔어요. 습관처럼요. 그건 자그맣던 불안을 불안을 더욱 증폭하는 행위였어요. 금세 뽑아내버릴 수 있는 여린 싹을, 거대한 덩굴로 키워버린 것처럼요.
“그르니께 나는 그냥 뽑아야지. 노상 뽑아야지, 뽑아 없애야지.”
어르신의 이 말씀을 마지막 편지에 담아 보내고 싶었어요. 그리고다의 텃밭을 돌보는 농부 윤수에게 필요한 말이면서, 여차하면 일상을 삼켜버리는 불안을 매일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7년 차 독립자 윤수에게도 필요한 말 같아서요. 작가님, 이 말을 외며 텃밭의 잡초도 마음밭의 불안도 잘 뽑아가며 건강히 지내기로 해요. 불안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지만 ‘불안 재벌’만큼은 되지 않기로 해요. 혹시, 아주 혹시라도 그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는 지체 없이- 콜 미 오얼 텍스트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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