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초가 돼서야 모종을 심으신다는 이야길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오, 텃밭러의 감각을 타고나셨네! 딱 이때라고 작가님 몸에 깃든 어떤 기운이 알려준 게 아닐까?' 사실 3월만 되어도 한낮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잖아요. 그러면 저같이 성격 급한 사람은 텃밭에 무언갈 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겨요. 3월은 텅 빈 텃밭을 일궈가며 어찌어찌 버틴대도 4월엔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워집니다. 내내 엉덩이를 들썩거리다 읍내 종묘사를 기웃거리기도 하고요. 아직 노지 텃밭에다 모종을 심기엔 이른 거 아는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거 아는데… 대책 없이 괜찮을 거 같은 마음도 함께 들거든요. 그때 그 마음을 무사히 지나와야 하는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양손 가득 모종 쇼핑을 해서 돌아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계절 및 모종 얼리어답터(이런 것도 얼리어답터로 쳐준다면요)인 제가 대문 앞에 차를 세우고 모종을 꺼내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마디씩 하시죠.
“아이구, 아직 너무 이른디 그랴.”
“두어 주 더 있어야 디야. 하우스나 지붕 있는 디나 지금 심지.”
그러면 저는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날도 제법 따숩고…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
예상하셨겠지만 모종들은 며칠 못 가 늦서리를 맞고 장렬히 쓰러졌어요. 수풀집에서 맞는 세 번째 봄까지도 반복하던 일입니다.
금산에는 4월 말까지도 서리가 내립니다. 늦을 만(晩) 자에 서리 상(霜) 자를 합쳐 만상(晩霜)이라고도 부르는 늦서리인데요. 끝서리가 내리는 날을 가리키는 만상일은 지역마다, 해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다고 합니다. 또 같은 지역이라도 지대의 높낮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도 하고요. 어르신들 말씀이 어떤 밭에는 5월 초에도 더러 서리가 내린대요. 그러니 모종은 일러도 5월 초, 안전하게는 어린이날이 지난 후 심는 게 가장 좋다고들 하세요.
이제 저는 3월엔 밭을 갈아 두는 것으로 만족하고요. 4월에는 서리 피해가 덜하고 씨앗으로 심는 당근이나 완두콩 같은 같은 작물을 먼저 심습니다. 그러다 5월이 되면 모종으로 심는 고추나 토마토 같은 작물을 심어요. 작가님은 늑장을 부려 5월 초에 모종을 심었다고 하셨지만, 사실 아주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일을 하신 거랍니다. 자신도 모르게 텃밭러의 재능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나저나 작가님 편지에서 광대나물을 보고 너무나 반가웠는데요. 이 친구가 그리고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반겨서는 안 될 것 같아 재빨리 표정을 바꿨습니다. 어여삐 핀 꽃들과 연둣빛 산을 바라보며 누적된 피로를 치유하신다고 하셨는데요. 틈틈이 제초에 힘쓰는 걸 잊지 마시길 이곳 금산에서 소리쳐 외칩니다! 광대나물이란 녀석은 한겨울 새하얀 눈 사이로 '까꿍' 하고 보랏빛 고개를 내밀어 저를 공포스럽게 했던 잡초란 걸 부디 잊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훈수를 두는 것이 저는 꽤 열심히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 같지요? 전혀 아닙니다. 곧 수풀집에 오셔서 직접 보게 되실 테지만… 저 역시 텃밭 관리는커녕 넋 놓고 꽃구경, 나무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는 계절이잖아요. 들어서는 길마다 꽃망울이 조롱조롱 맺힌 나무들이 걸음을 붙잡으니까요. 요즘의 산책은 마치 삼보일배 같습니다. 세 걸음 걷고 꽃나무를 가만 들여다 보고, 또 세 걸음 걷고 각도를 바꿔가며 꽃 사진을 찍고, 또 세 걸음 걷고 까치발 세워 꽃 향기를 맡아요. 네, 그러느라 산책 시간이 엄청 길어졌고 제초작업을 할 시간은 부족하다는 이야기 맞아요.
이럴 때 근거자료 같은 걸 들고 오면 주장에 힘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검색하며 배운 사실을 적어 봅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에 자생하며 꽃을 피우는 수목 중 곤충이나 새가 인식할 수 있는 색*으로 꽃을 피우는 수목은 464종입니다. 그중 230종이 5월에 꽃을 피운다고 해요. 꽃을 피우는 나무 중 절반이 이달 5월에 꽃을 피웠거나 조만간 꽃을 피울 예정인 거죠(46%는 6월에 꽃을 피운대요). 이런 때니 꽃구경을 안 하고 배길 수 있나요. 작가님이나 저나 그럴 수밖에 없(었) 던 거죠.
*곤충과 새를 이용하여 꽃가루 받이를 하는 충매화와 조매화
말 나온 김에 요즘 구경 중인 꽃나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 봐요. '오월에 그윽한 향기와 함께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나무'. 작가님, 이런 설명을 읽으면 어떤 나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라일락과 등나무가 떠오릅니다. 전 같으면 이 두 나무를 말하고 나면 다른 나무가 더는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달 들어 열심히 꽃구경, 산 구경을 꽤 열심히 한 덕분에 또 다른 이름도 덧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얼마 전 수풀집으로 향하는 길에 발견했습니다. 차가 거의 없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중간중간 산등성이를 내다보면서요. 그때 멀리에 아주 우람한 꽃나무가 보였습니다. 산 속이라 벚꽃이 뒤늦게 피는 건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월에 벚꽃이라니요. 게다가 분홍빛이 아니라 연보랏빛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재빨리 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들은 대체로 괴롭기 마련이지만, 운전 중에 생기는 이런 의문들은 반가워요. 매주 편도 2시간 30분 거리의 집과 집을 오가는 운전자라서 그럴 거예요.
생각하는 사이 꽃나무가 있는 풍경은 지나가버렸지만 이어진 길에서 몇 번이나 같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그 후로도 수풀집과 서울집을 오가는 길에 계속 눈에 띄었고요. 하지만 꽃나무의 이름은 계속해서 물음표로 남아 있었어요. 걷다가 보았다면 걸음을 멈추고 네이버 스마트렌즈를 켜 통성명을 했을 텐데 말이죠.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된 건 며칠 전입니다. 어느새 오월이 깊어져 연보랏빛 꽃대 사이로 잎이 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거든요. 그 잎이 어찌나 큰지, 멀리 떨어진 도로 위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제 눈에도 선명히 보였습니다.
'혹시… 오동나무?'
운전대를 놓자마자 '오동나무'를 검색했습니다. 잠시 후 핸드폰 화면에 나무의 사진이 뜨는 순간, 몇몇 장면이 훅 밀려왔어요. 그리고 마치 드라마의 회상 씬처럼 촤라락 지나갔어요.
하늘을 향해 치켜든 횃불 같던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 그 아래서 향기를 맡느라 킁킁거리던 봄날이 한 장면. 큼지막한 초록빛 오동나무 잎을 들고 달리면서 만화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나뭇잎 우산을 상상하던 여름날이 한 장면. 낙엽이 되어 떨어진 커다란 오동나무 잎이 담요 같다며, 나무뿌리를 베개 삼아 누워서 사그락사그락 몸 위에 덮던 가을날이 또 한 장면. 바짝 마른 오동열매 껍데기가 흔들리며 소릴 내자, 괜스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겨울날이 한 장면.
'오동나무 맞네!'
오동나무는 제 어린 시절의 여러 순간들을 함께 한 나무입니다. 오동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 워낙 크기도 했고, 제가 또래보다 유난히 체격이 작은 어린이였어서 더욱 압도적인 크기로 느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우람한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또 어느 날은 커다란 오동나무 잎 아래에 몸을 숨기고 안도하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쩜… 이런 존재를 이렇게 새까맣게 잊었을까요?
나무의 이름을 외거나 계절의 일들을 챙기는 것보다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겠죠. 하고 싶은 일을 힘껏 하고, 또 제 몫을 성실히 해내는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비슷하겠지요. 그렇지만 오동나무와 함께 보낸 어린 날의 장면들을 떠올렸을 때 지금의 제가 여전히 기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어요. 나무의 이름을 외고 꽃향기를 쫓을 때 행복하다면, 그런 기억이 앞으로의 삶을 잔잔히 웃음 짓게 만든다면… 이 일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주고 마음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