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모종, 작물 종자, 먹을거리를 잔뜩 사 들고 장을 나섰습니다. 주차장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날씨가 좋아서 조금 걷기로 했어요.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 금산천을 따라서요. 하천을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꽃송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꽤 오래 자릴 지킨 벚나무들 같았어요. 둥치가 굵고 꽃송이가 야무졌거든요. 사진에는 잘 안 담길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핸드폰 카메라부터 들이밀었어요. 남는 건 사진뿐이야, 하면서요. 한참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카메라를 내렸습니다. 사진보단 눈에 담는 게 중요하지, 하면서요. 참 궁금한 게… 벚꽃 사진은 매년 찍는데 왜 매년 꾸준히 못 찍을까요? 저만 그런가요?
한참 찰칵대다 보니 배가 고파졌어요. 평상에 자리 잡고 앉아 장에서 산 감자 토스트를 꺼냈습니다. 금산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중간중간 작은 평상이 있어요. 평상에 앉아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벚꽃을 바라봤습니다. 바람이 솔솔 불 때마다 만개한 벚꽃의 꽃잎이 흩날리더라고요. 절로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크, 이거 완전 명장면이네.’ 하면서요.
뭔가 한 끗이 아쉬운 사진이지만 그래도 올려 보려고 인스타를 열었습니다. 온라인 세상도 온통 벚꽃 천지였어요. 사람들은 전국 각지의 벚꽃 명소에 있었습니다. 어쩜 저렇게 잘 찍었을까 싶은 사진(대포 카메라를 샀나?)들 사이사이에 아쉽다는 이야기가 더러 보였습니다. 사람들로 너무 붐벼 벚꽃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거나 이제 막 벚나무길을 조성해서 벚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요.
“아… 금산 오지. 여기 사람 별로 없는데. 벚꽃 풍경 정말 끝내 주는데…”
벚꽃이 만개한 일요일의 오후, 금산천의 벚꽃축제 플래카드는 조용한 풍경 속에서 나부끼고 있었어요.
작가님, 수풀집이 있는 금산은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지역 중 한 곳이에요. 그중에서도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에 속합니다. 유입되는 인구는 적고 유출되는 인구는 많아서 총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요. 2024년 2월을 기준으로, 금산군의 인구는 5만 명 ²입니다. 동기간 서울의 인구가 938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죠. 서울 인구가 금산 인구의 187.6배네요. 금산군의 면적이 577k㎡, 서울시의 면적 605k㎡로 두 지역의 면적이 엇비슷한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놀랍습니다 ³.
그런데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제 말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어요. 문경에 자리 잡고 사시면서 일이 있을 때만 서울로 향하는 작가님과 달리, 저는 6년째 서울과 금산을 오가면서도 결국 도시에 살고 있잖아요. 저는 서울에 발 붙이고 사는 938만 명 중 한 명입니다. 그런 제가 감히 지방 소멸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모르겠어요.
동시에 이런 생각이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곁에 두고 지내는 삶도 좋고,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고, 지방의 균형 발전도 중요하지만-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게 사회구성원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인지를요. 도시에서의 삶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업 때문에 도심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아요. 학업이나 가족 부양으로 수도권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인프라가 도시에만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결국 사회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겠죠. 이곳 금산 인구의 34%가 65세 이상인 상황에 출생인구는 감소하고 사망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인구는 줄게 될 거예요.
그런데 작가님, 최근 저는 새로운 인구 개념을 배우며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인구를 추산하는 또 다른 개념이 있더라고요. 정주 인구와 생활 인구라는 개념인데요⁴. 정주 인구는 지역에 항상 거주하는 사람, 생활 인구는 지역에 일정 시간 체류하는 사람을 말해요. 작가님처럼 문경에 자리 잡고 사는 사람은 문경의 정주 인구, 저처럼 금산을 오가며 사는 사람은 금산의 생활 인구로 추산하는 거죠.
생활 인구는 출퇴근자, 통학자, 관광객을 포함하기 때문에 누구나 가까운 지역의 생활 인구가 될 수 있어요. 생활 인구가 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인프라가 확충되어 장기적으론 정주 인구가 느는데 기여할 수 있고요. 그래서 요즘 저는 제가 주말을 보내는 금산, 이 작은 고장에서 꽃놀이와 물놀이를 하시길 권하고 있어요(가을이 되면 단풍놀이를 권하고, 겨울이 되면 겨울 산행을 권해 보겠습니다. 얼마 전 겨울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숨기는 게 좋겠죠?) 요즘은 제가 사는 금산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지방 도시의 장에 들러보는 일도 강력하게 추천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조만간 금산의 생활 인구가 되어주셔야겠어요. 금산의 생활 인구가 되시면 문경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광과 아늑한 정취를 누리실 수 있을 거예요. 괜찮으시다면 지난 번에 제가 못 오른 성봉에도 함께 올라요.
이 초대장에 작가님 할머님의 쾌유와 동네 어르신들의 안녕과 문경의 생활 인구가 마구마구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냅니다.
¹'금니'가 아니라 꼭 '금이빨' 이라고 쓰여 있죠.
²출처 : KOSIS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024년 2월 기준.
³출처 : KOSIS (한국국토정보공사, 도시계획현황)
⁴출처 :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행정안전부, 2023
2024년 4월 12일
벚꽃 흩날리는 금산에서 김미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