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해가 난 뒤라 등산로의 눈은 대부분 녹은 상태였습니다. 조용한 산속엔 콸콸콸 물이 흐르는 소리, 나무 위에 쌓인 눈이 한꺼번에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좀 더 깊은 산길로 접어든 후 큰 숨을 들이쉬니 차가운 공기가 가슴을 가득 채우다 못해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추운 날 기어코 산에 오르려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물기를 머금은 산 풍경을 감상하며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요? 정상인 성봉까지 이제 1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갑자기 산세가 험해지고 길이 좁아졌어요. 눈이 와서 그런가 산길이 유난히 낯설었어요. 두 발로 걷기가 쉽지 않았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배낭에서 등산스틱을 꺼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게 되더라고요. 나뭇가지 위에 뭉쳐 있다 떨어진 눈덩이, 미처 녹지 않은 눈, 계곡 주변의 살얼음, 겨우내 쌓인 낙엽더미, 바위 위의 이끼들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친구도 사정이 비슷했어요. 결국 둘 다 멈춰 서서 아이젠까지 꺼내 신은 뒤 다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가도 가도 성봉이 나오지 않았어요. 1km 남았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말이에요. 혹시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을 때-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친구 독사진도 찍어주고, 제 독사진도 찍고, 둘이 함께 셀카도 찍었어요. 그리고 자리 잡고 앉아 찰밥을 막 꺼내려던 순간이었습니다.
“근데 왜 성봉이라고 안 쓰여 있지?”
친구가 핸드폰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친구가 보여준 것은 성치산 성봉에서 기념촬영을 했다는 다른 등산객들이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바위에는 한글로 “성봉”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어요. 반면 저희가 독사진도 찍고, 함께 셀카도 찍은 바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쓰여있지 않았고요. 공중에서 마주친 저희 둘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헐! 여기가 아닌가 봐!”
당황한 저와 친구는 급히 배낭을 여미며 일어났습니다.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봤지만 방금 사진을 찍은 바위 외에 정상석으로 보이는 다른 바위는 없었어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산의 능성이니 여기가 꼭대기가 맞는데 도대체 성봉은 어디 있는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잠시 후 저희는 능선의 끝에 다다랐고, 눈앞에는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낭떠러지만 있었습니다. 이 쪽이 아닌 것 같다며 다시 반대쪽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그곳에는 또 다른 낭떠러지일 뿐 성봉도 다른 길도 없었어요. 아무래도 성봉이 1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본 이후에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방향을 잘못 잡은 모양이에요.
“성봉은 아니지만 여기서 찰밥 먹을까?”
친구가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두 시간 후면 해가 질 텐데 얼른 하산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을 만나게 될 것 같아 불안해졌어요. 그런 맘으로 급히 먹다간 체할 것 같기도 했고요. 성봉을 찾는 것은 포기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얼른 하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능선을 헤매고 다니는 사이 시간이 꽤 흘렀고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거든요. 이런 날씨라면 어둠이 더 빨리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산행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정상석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아니었던 바위에서 다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저희가 올라왔던 그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같은 길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턴 정말 정신이 없더라고요. 내내 태연하던 친구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보였어요. 왔던 발자국을 따라가 보기도 했지만, 아까 진짜 성봉을 찾겠다며 능선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수십수백 개의 발자국이 섞여버린 뒤였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희는 비탈을 미끄러지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는 체력이 뚝 떨어졌고 친구의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그 상태로 조금 더 헤매면 체온이 떨어지고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았어요.
“안 되겠다. 구조요청 하자. 이제 일몰까지 한 시간밖에 안 남았어.”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119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결된 119 상황실에서는 제일 먼저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물으셨어요. 제 핸드폰 배터리는 15% 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 친구의 핸드폰은 80% 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어 부상자 유무를 확인하신 뒤, 위치를 확인에 필요한 여러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곤 말씀하셨죠.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너무나 든든하고 감사한 말이었습니다.
물론 전화를 끊은 뒤에도 두렵기는 했어요. 부상자가 있는 위급한 경우가 아닌 이상 119 구조대원분들도 등산객들과 같은 길로 이동하시는 데다, 산속에서는 위치추적이 정확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저희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가능하면 저희도 원래의 등산로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중간중간 전화로 저희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시던 구조대원 선생님께서는 물소리를 듣고 물길 가까이로 이동해 보라고 하셨어요. 친구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방향을 나누어 계속 길을 찾았습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요. 친구의 외침이 들렸어요.
“미리야! 여기, 길! 여기 길 있어!!!”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오르내리며 찾을 땐 보이지 않았던 길을, 구조요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은 거였어요. 기쁘고 반가워서 거의 구르다시피 길을 내려왔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아픈 줄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구조대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물길이 보였어요. 조금만 더 내려가면 등산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구조대에 상황과 위치를 공유하며 고도가 낮은 곳을 향해 계속 걸었어요. 잠시 후, 마침내 등산로를 찾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봤던 이정표, 성봉이 1km 남았다던 그 이정표가 있는 곳이었어요. 구조대에 전화를 걸어 이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고, 여기서부터는 아는 길이라 찾아갈 수 있다고,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럼에도 구조대원 선생님들은 저희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안전하게 하산하는지 끝까지 확인하셔야 한다고요. 그렇게 저희는 등산로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저와 제 친구는 남색과 주황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은 119 구조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무려 다섯 분이었어요. 만약 저희가 등산로를 찾아 나오지 못하면 흩어져 수색을 해야 하니 여러 분이 출동하신 거죠.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구조하러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소동을 만들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 죄송하다고 허리 숙여 인사드렸어요. 나무 위에 쌓인 눈들이 등산로를 지워서 눈 온 뒤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며 괜찮다고 하셨는데, 그럴수록 저는 더 죄송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구조대원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구조대원님들은 뒷짐을 지고 사뿐사뿐 내려가시는데도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따라가기가 벅차더라고요. 그래도 저희가 얼른 따라내려 가야 복귀하실 수 있으실 테니 헉헉거리며 열심히 산을 내려왔어요.
산의 초입의 이르러서야 모든 구조대원 선생님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전화로 물길을 찾으라고 말씀하셨던 구조대원님, 산행할 땐 산길샘 앱을 꼭 설치하라고 말씀하신 구조대원님, 아직은 앳된 얼굴의 구조대원님, 물이 넘친 징검다리를 건너다 신발을 적셨다는 구조대원님, 말없이 내내 앞장서시던 구조대원님께 다시 한번 배꼽 인사를 드리며 감사를 표했어요. 그러고 나서 차량을 타고 떠나시는 구조대원 선생님들을 배웅했습니다. 저희 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여섯 시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다 쓰고 보니 정말이지 부끄럽네요. 저로 인해 꼭 필요한 곳에 구조력이 쓰이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부끄러운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그렇대도 다른 곳에는 이렇게 구구절절 못 쓸 것 같아서 작가님에 보내는 편지에 털어놓아요.
덕유산이든 성치산이든, 그날 저는 제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러 나섰다가 이런 일을 겪은 거잖아요. 하지만 구조대원님들은 매번 이렇게 타인의 의지와 행동으로 벌어진 일들, 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자연에서 벌어지는 재해 속에서 다른 존재들을 구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몸과 마음을 다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직업인으로서든 누군가의 가족으로서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든 두렵지 않을 리 없고 힘들지 않을 리 없는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어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길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보내요.
참, 결국 찰밥은 다시 수풀집에 돌아와서 먹었습니다. 눈물의 찰밥을 먹고 잠이 든 후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꿨고요.
2024년 3월 13일
감사한 마음으로, 김미리 드림
추신 1.
자궁 근종과 난소 낭종으로 울면서도 끊임없이 그리고 쓰는 사람. 울면서 알게 된 것들을 나누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바로바로 귀찮!
추신 2.
할머님의 쾌유를 빌어요. 재활도 잘 해나가실 기도하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