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송구한 마음으로 일주일이나 늦은 편지를 부칩니다. 매월 한 통의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하며 마감일을 정했었지요. 작가님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편지 마감부터 걱정하실 정도로 마감일 엄수에 힘쓰셨고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아픈 곳 하나 없이 무탈한 와중에도 마감에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남루한 핑계를 대어 보자면, 지난 3주 간 수풀집에 오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서울에서 쓸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가님께 보내는 이야기는 대체로 수풀집에서 길어 올린 소재들로 쓰이거든요. 수풀집에 오지 못하자 소재 주머니가 그만 마르고 말았습니다. 12월의 편지 ‘해빙의 추억’처럼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이야길 꺼내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시없을 2024년 2월의 이야길 담아 보내고 싶었어요. 구차하지요? 부끄러운 핑계와 공손한 사죄로 시작하는 편지입니다.
3주 만에 돌아온 수풀집은 조금 썰렁했습니다. 집이 낡는 이유는 사람이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말을 체감하며 들어섰어요. 도착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소망님을 살피는 일입니다. 여전히 찬기가 남아 있는 바닥을 조심스레 짚어보는 소망이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어요. ‘아이고, 장해. 아이고, 의젓해.’ 폭풍칭찬을 하며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200km가 넘는 거리를 좁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사람도 힘든 일이잖아요. 소망이가 차량이동에 익숙하고 무던한 고양이라고 하지만, 감각이 예민하고 영역을 지키며 사는 동물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힘들어도 ‘눈나, 나 힘들어. 여기 여기 아파.’ 하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제가 컨디션을 꼼꼼히 살필 수밖에요. 소망이가 무릎을 벗어나 캣타워로 향하면 사료와 물을 챙길 순서입니다. 식기를 세팅한 뒤에는 소망이 화장실을 점검하러 가요.
보통은 화장실 모래의 양이 적절하고 깨끗한지 확인하기만 하면 끝나는데요. 이번엔 새 모래를 부어 줘야 했습니다. 지난번 서울로 향하기 전 화장실 모래를 버리고 세척해 두었거든요. 새 모래를 부으려고 소망이 화장실 옆 모래 봉지에 손을 뻗었습니다. 모래를 집어 들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왜 이렇게 가볍지?”
벤토나이트라는 점토로 만들어진 고양이 모래는 한 손으로 들지 못할 정도로 무겁습니다. 9kg이 넘어 들 때마다 버거워요. 그런데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가뿐하게 들리지 뭐예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재빨리 봉지를 흔들어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망했다는 걸 느꼈어요. 아주 적은 양의 모래가 흔들리며 ‘치릭, 치릭’ 소리를 낼 뿐이었으니까요.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모래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벽장 아래 당당하게 세워져 있던 모래 봉지가 이렇게 텅 비어있을 줄 몰랐어요. 수풀집엔 여분의 고양이 모래가 없는데 큰일이 난 거죠. 혹시나 해서 집 안 곳곳과 창고까지 뒤져보았지만 역시나였어요.
캣타워 위에 엎드려 쉬던 소망이가 어느새 곁에 와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어요. 저는 믿을 수 없어 봉지를 계속 흔들며 말했습니다.
“소망아, 모래가 없어…… 어쩌지…? 누나가 정말, 정말 미안해.”
소망이의 우주 같은 눈동자에 초점 없는 제 시선이 비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얼마 안 되는 모래를 탈탈 털어 화장실에 넣었습니다. 평소의 4분의 1도 안 되는 양이었어요. 얇게 깔린 모래를 한쪽으로 모아 면적은 좁더라도 두께를 두텁게 만들어 봤습니다. 손을 떼자마자 소망이가 화장실로 향했어요. 잠시 후엔 늘 그랬듯 ‘스륵, 챡, 스륵, 챡’하고 모래 덮는 소리가 났고요. 소망이가 나온 후 재빨리 화장실을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남은 모래를 끌어모아 만든 작은 면을 잘 사용했더라고요.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요.
소망이가 모래가 빈약한 화장실을 사용해 주자 저는 약간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토요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당장 읍내까지 나간다 해도 고양이 모래를 살 만한 곳은 없을 게 뻔했습니다. 수풀집은 로켓배송이나 반려동물 쇼핑몰의 당일배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괜히 쇼핑몰 앱을 들락거리기도 했고요. 작가님이 계신 집업실도 사정도 비슷하겠지요? 물론 작가님은 미리미리 주문하여 이런 사태를 초래하지 않겠지만요… 결국 다음 날 읍내 마트 개점시간에 맞춰 달려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내내 스스로를 책망했어요. 먹고 싸는 것은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그조차 제대로 살펴주지 않는 엉터리 보호자라니요. 그 와중에 놀랍게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수풀집에 도착하마자 소재가 생기네?’
글을 쓰는 일, 제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멀리까지 가는 일, 그래서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일. 이런 일들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론 눈꼴사납기도, 두렵기도, 징그럽기도 합니다. 자신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심지어 반려동물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놓치지 않고 글로 쓰는 일이니까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행운과 불운, 성공과 실패, 어떤 라벨을 붙여 분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과 사건까지도 글감으로 모으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함께 겪거나 전해 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름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만들어 통과시키고, 제멋대로 편집한 후 세상에 내보이며 살고 있습니다.
수풀집에 오지 않았던 지난 몇 주 역시 서울집에 머물며 그런 작업을 했습니다. 주로 새 책의 마무리 작업을 했어요. 이번 책은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대해 쓰는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 시리즈’ 예요. 저에게는 그런 것이 ‘집’이라서 집에 대해 썼습니다. 연말 회식 때 잠깐 말씀드렸던 것 같기도 한데(저도 취해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집에 관해 쓰다 보니 가족, 유년 시절, 돈의 형편 같은 이야길 빼놓을 수 없었어요. 비밀까진 아닌데 굳이 남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살아왔던 이야기. 그런 이야길 끌러놓아야 했습니다. 부단히 망설이고 부쩍 많이 지워가며 썼어요. 가려져 있던 제 면면들을 확인한 사람들이 앞으로 저를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되니까요.
미움받을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토록 넘쳐나는 시대에,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때에, 제가 살았고 또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쓰는 일이요. 중도에 몇 번이나 포기할 뻔했지만 낼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썼습니다. 글이 길을 잃지 않고 제 자릴 찾아갈 거라고 믿고 또 믿으면서요. 이제 책이 될 글들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작가님이 첫 편지에 그러셨죠. 첫 책을 내고는 ‘이 짓거리 다신 못한다’ 생각했다고. 사실 지금 제 상태가 딱 그래요. 그러면서 또 다른 책이 될 이 글을 쓰고 있다니 조금 웃기긴 하네요. 이 글은 책의 원고라기보다 작가님께 보내는 편지니까요……
다음 날 아침엔 마트 개점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어요. 마트엔 고양이 모래가 없었습니다. 나름 대형마트인데도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차를 몰아 다른 마트로 향했습니다. 그곳엔 한 종류의 고양이 모래가 있었습니다만 소망이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제형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다음, 또 다음 마트로 향했습니다. 몇 곳을 들르고서야 소망이가 쓰는 모래와 조금 비슷한 모래를 찾을 수 있었어요. 처음 마트에서 발견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몇 군데 들러보니 지금 제가 소망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모래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산 아래 물길을 따라 달리며 차창 밖을 내다봤습니다.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때 크고 하얀 새가 날아가다 강 한쪽에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머릿속에 소망이의 화장실이 맴돌아 망설여졌지만 이내 속도를 줄였습니다. 적당한 곳을 찾아 차를 세우곤 새가 있는 강가로 조심스레 다가갔어요. 멀리서는 하얀 새만 보였었는데 강 한 편에 검은 빛깔의 오리떼도 자맥질을 하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어요. 며칠 전에 봤던 새 도감을 떠올려 봤습니다. 하얀 새는 중대백로, 오리떼는 흰뺨검둥오리 같았어요. 중대백로가 울음을 울며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흰뺨검둥오리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반대쪽 수면에 순서대로 다시 내려앉았습니다. 충격적으로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찰나였습니다.
울컥 눈물이 났어요. 살아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참 좋다는 생각에 흐른 눈물이었을까요? 한동안 한껏 쪼그라들어있던 마음이 자연 앞에서 탁 펼쳐지며 나는 눈물이었을까요? 뜬금없던 눈물의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때 다짐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런 자연을 잊지 않고 늘 곁에 두며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에 살든지, 머물든지, 계속 자연에 기대어 힘껏 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작가님, 자연은 2월의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카렐 차페크는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을 썼더라고요. ‘2월은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덜떨어진 애송이 달이다. 하지만 꼴에 변덕스럽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교활하기로는 열두 달 가운데 단연 최고다.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낮에는 꽃망울을 덤불 밖으로 살살 꼬여내어선 밤이 되면 얼려 죽이고, 당신을 한껏 유혹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얼간이 취급을 하는 게 바로 2월이다.’
글을 읽던 당시엔 ‘2월에게 너무 까칠하시네’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2월에 다시 읽으니 카렐 차페크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너무나 알 것 같습니다. 만약 2월이 독서를 즐기다가 이 구절을 발견했다면…… ‘앗, 뼈 맞았군’ 했을 거예요.
저는 2월의 변덕과 교활함, 용의주도함에 놀라고 감탄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하를 맴돌던 기온이 며칠 새 영상 17도를 훌쩍 넘었고, 봄인가 싶은 따사로운 햇빛이 불더니 하루이틀 만에 갑자기 창문을 부술 것 같은 강풍이 불었으니까요. 어제는 남부지방과 제주에 때아닌 호우 특보가 발효되기도 했습니다. 행정구역상 중부 지방이지만 차로 10분이면 남부 지방에 닿는 수풀집에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지붕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줄기는 겨울비도 같지도, 봄비 같지도 않았어요. 한여름에 내리는 폭우 같았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는 비가 개어 산책을 나설 수 있었어요.
동네 어귀부터 시작되는 숲길을 따라 산으로 향했습니다. 2월의 숲은 원래도 한산하지만, 간밤에 많은 비가 내린 터라 인적이 더욱 없었어요. 꽃눈이 통통해진 매화나무를 지나, 갯버들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저 멀리 폭포가 보이는데 저도 모르게 “와아아아아-!” 하며 탄성을 질렀어요.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쏟아지고 있었거든요. 밤사이 내린 비가 폭포수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