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 일찍 등유 기름을 채우고 (자그마치 60만원이었습니다..) 마루와 산책을 마치고, 속이 허전해서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난로 옆에 앉아 편지를 씁니다. 문경은 영하 14도예요. 산책 코스는 마루가 원하는 대로 갔는데 너무 추워서 그런지 산책 좋아하는 마루도 짧은 코스로 마을을 돌고 잽싸게 집업실 대문으로 향하더라고요. 얼마나 추웠으면 깊은 화분에 심어 남향의 창고 안 볕드는 자리에 둔 대파가 얼었더라고요. 좀처럼 얼지 않는 자리인데도요. 덕분에 대파를 가득 넣은 라면으로 먹었습니다. 라면을 자주 먹진 않는데 추워서 그런지 속이 허하더라고요. 아침으로 김치콩나물고구마죽을 해먹었는데도 부족했나봅니다. 뜬금없지만 아침에 너무 맛있게 먹어서 <김치콩나물고구마죽> 레시피를 적어 보아요.
- 찬밥에 한 공기에 물 두 컵,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김치 크게 세 숟갈과 고구마 한 개, 버섯 감치미를 1/2 티스푼 넣고 바글바글 끓입니다.
- 팔팔 끓으면 콩나물 한 주먹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저어가며 끓인 후 그릇에 담아냅니다.
- 참기름 반 숟갈, 통깨를 손으로 살짝 부숴서 뿌려요.다른 반찬 없이도 아주 맛나니 속이 허할 때 드셔보세요!
편지를 쓰신 때가 새해가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작가님의 일상에 이렇게 수 많은 다짐이 오고 갔다니 신기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저는.. 이상하게 다짐은커녕 ‘다시 또 1년을 버텨야 한다니’ 하는 암울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거든요. 실은 조금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그래서 내게 적당한 일을 주길 바라며 마음 졸이는 일을 또 1년이나 해야한다는 암담함과 동시에 '만약 아무도 일을 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으로 보낸 연초였습니다.
저는 연초가 되면 작년에 했던 일들과 벌었던 수입을 회고하며 결산하는데요, 작년은 재작년보다 수입이 줄었더라고요. 그런데도 그 무수한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돈을 대체 어떻게 벌었나 싶더라고요. 이 담당자님은 어떤 경로로 나에게 닿아 일을 같이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닿기 위한 우연을 떠올리면 과연 올해도 그럴 수 있을까 싶고 거기에 일희일비할 제 모습이 떠올라 벌써부터 진이 빠지더라고요.
정말 돈이 전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돈에 얽매이는 걸까요? 작년에 큰 교통사고가 나고 돈이 전부가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음에도 연초부터 돈에 휘둘리고 있었어요. 한 해를 떠올리면 일과 돈만 떠오르고, 그러다보면 곧 잘 불안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장 2월 초까지 예정된 협업이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정해진 일이 없더라고요. 물론 작가님과 주고받는 이 서간문 마감이 극한의 불안함은 잠재워 주겠지만 그것은 제게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대한 안정감이지, 금전적인 안정감은 아니에요. 인세가 금전적인 안정감을 주진 않으니까요. (대박이 나면 모르겠지만, 과거 두번의 책은.. 그랬습니다) 덕분에 연초부터 아무 연락 없는 조용한 나날들에 불안감을 베이스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진절머리 내면서도 어느새 다시 어디 나 찾아주는 사람 없나 하며 목을 쭉 빼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우연인지 일이 들어왔습니다. 디지털드로잉 강의 일인데 강의료도 적당한데다 횟수도 여러번이라 3월까지 든든해졌어요. 불안함은 온데 간데 없고 “역시!”를 외치며 약간의 자만감과 함께 마음이 편해졌죠.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더라고요. 이어서 “그럼 4월엔?” 하며 다시 불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한 일주일 지났을까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일희일비할거야?”
사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프리랜서 초창기 시절에는 저를 증명할 길이 없으니 이름 있는 회사와 함께 하는 게 아주 중요했습니다. “내 그림 멋지지?” “내 창작활동 어때?”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 이 회사랑 협업했어!" 라는 말이 제 자신을 증명하기 더 쉬웠거든요. 더 멋진 회사와 일해서 “내가 이 이런 회사랑 일할 정도로 검증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게 중요한 시절이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렇기에 불안함은 당연한 거였죠. 성장하기 위해, 선택받지 못한 불안함과 동거하는 시절이 필요한 거였습니다. 문제는 그런지 어느덧 10년차란 것입니다. 8월이 되면 귀찮으로 그림을 그리고 쓴지도 만 10년이 될 거예요. 그런데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지칠만도 했죠.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이 시작됐습니다. “지금처럼 광고주와 플랫폼에 기대며 살다간 계속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처럼 즐겁고 보람된 일도 없지만 누군가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해지긴 싫었거든요. 그 고민은 이런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청탁받지 않은 일을 청탁받은 것처럼 해보자”
작가님의 지난 편지에 쓰셨던 무용한 일과 결이 비슷할 것 같기도 해요. 당장 돈이 크게 안되더라도, 제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 제 힘으로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지금까지 독립출판을 하거나, 굿즈를 직접 만들고 팔아보면서 단기적으로 해봤다면 이번엔 좀 더 길게, 멀리,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요. 그게 뭐가 됐든 청탁받지 않은 일을 아주 멋진 사람으로부터 더 멋진 금액과 함께 청탁받은 것처럼 책임감을 갖고 해보자 싶었어요.
그리고 그걸 구체화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제도 정했어요. <EWC>, Emotion Writing Club의 약자로 “기분 쓰기 클럽”이에요. 누구나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드로잉 커뮤니티를 구상했어요. 유명한 회사나 잘나가는 플랫폼이 보증서지 않더라도, 저란 사람을 믿고 이 클럽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핵심 가치를 알차게 구상하고, 그걸 어떻게 전달할 건지 사이트와 소통 창구를 설계하고, 제작과 홍보 일정을 세우고, 비용을 책정하고, 어떤 식으로 계속 굴려갈지 시스템 전체를 기획했어요. 지금은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려놓고 핵심 메시지와 리워드를 더 깊게 고민하는 중이에요. 남은 1월 동안 그 알맹이를 잘 채우고 시스템에 살을 붙인 뒤 구정이 지나면 시도해 볼 예정이고요.
꽤나 구체적이죠? 어쩌면 공식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서간문에 이토록 경솔하게, 준비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언급하다니, 맙소사. 원래는 이 정도로 솔직하게 다 쓸 생각은 없었어요. 쓰다 보니 이렇게 됐지만 이 정도로 자세히 쓰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게 생각해놓고도 1시간 단위로 계속 마음이 바뀌기 때문일 거예요. 청탁받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하려니 밀어부치는 힘도 부족하거니와 좀 전까지 확신에 찬 기획도 몇 시간 뒤엔 구려보이더라고요. 초반의 기세와 용기는 일 단위로 줄어들고 있고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썼어요. 작년 초 작가님의 인스타 게시물에 제가 소망처럼 쓴 댓글도 이루어졌으니 (뉴욕 길거리 걷기) 이번에도 써야겠다 싶어서요. 이렇게 편지에 썼으니 이제는 꼭 해야할 거에요. 해야만 해요! 정말 이렇게 휘둘리며 살긴 싫거든요 흑!
아 그런데 말이죠, <EWC>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중간에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앞서 말한 디지털 드로잉 강의가 일정 문제로 엎어질 뻔 했거든요. 저에게 큰 안정감을 준 일인데 엎어지게 되면 엄청 불안해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속으로 ‘엎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게 중요한 건 자립이고, 자립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할 생각을 하다보니 청탁받은 일이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제가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 같아요. 1. 일이 들어오거나 2.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거나. 전자는 제가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후자에 집중해보려고요. 나를 믿고. 멀리 보고요.
저는 이렇게 1월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생각만 하고 움직이는 게 없어서 저 역시 헐렁한 1월을 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마 1월 내내 이렇게 고민하다가 2월이 되어야 움직일 것 같아요. 연초를 이렇게 보내보니 이것도 좋은 방법 같기도 해요. 1월 내내 잘 고민하고 생각해서 1년을 잘 나면 되니까요.
작가님의 <탐조하며 자연에서 놀기> 다짐은 제게도 무척 반갑습니다. 언젠가 작가님과 버드 워크를 할 수 있을 거란 소식만으로도 기뻐요! 작년 봄,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한달살이 했을 때 숙소에서 도보 3분 거리의 맥골릭 파크에서는 토요일마다 아침 9시마다 버드 워크가 열렸는데요. 준비된 사진과 대조해가며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들을 관찰하고 귀여운 소리를 듣는 산책 프로그램이었는데, 남녀노소, 현지인, 외국인, 국적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도 모르는 새 이름을 영어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한국에서 천대 받는 비둘기 자선 보호인이 있을 정도로 새가 사랑받는 공원에서 새 이야기를 듣는 귀한 경험 앞에서 왜 그리 주저했는지! 돌아오고 나서 후회 막심이었는데 다음에 작가님을 뵈면 함께 버드워크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너무 너무 기쁩니다. 새들을 호명하는 작가님의 반짝이는 눈과 신난 표정도 기대되고요. 새와 나무와 함께 거닐며 나눌 이야기들도 무척 기대됩니다. 새들의 터전이란 고려 없이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멀쩡한 나무도 휙휙 베어 버리는 여기 한국에서 버드 워크가 가능할까 싶었거든요.
지난 편지에서 수풀집에선 새 소리 덕분에 알람 없이도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새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그리고다였어요. 언젠가 환기를 하려고 아주 잠깐 방충망 없이 창문을 열었을 때, 그 사이를 못 참고 작은 새가 들어올 정도로 새가 많은 동네 입니다. 그렇게 들어온 새가 들어 다시 못 나가고 여기 저기 부딪칠 땐 혼비백산이 되고 손으로 잡으면 다칠까 잡지도 못하고 문과 창문을 다 열어 두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정도로 새가 많은 동네인데 새소리가 얼마나 좋겠어요. 덕분에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실없이 웃던 날이 정말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