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저희 집업실에는 화장실이 세개 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무척 넓은 집 같지만 넓은 건 마당이고 거주하고 있는 본채는 25평 남짓한 크기 입니다. (그 외엔 난방이 되지 않는 작은 별채가 두 개, 창고가 세 개 입니다) 25평형 아파트였으면 많아도 두개였을 화장실이 무려 3개나 있는 이유는 제목에도 써두었듯이 언젠가 그림 그리고 글 써서 밥벌이가 안되면 에어비앤비를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지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짓다”라고 표현한 것은 옛날 집을 수리하는 것이 아예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 버금갈 만큼 큰 공사였기 때문이에요.. 작가님 역시 그랬겠죠?) 다행히 지금은 5년 전 예상보다 용케 잘 버티고 있지만 5년 전만해도, 제가 이 일을 해서 돈을 모을 수나 있을 런지,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다 하다 망하면 에어비앤비를 해야지!' 하고 가뜩이나 작은 집에 작은 방을 네개나 만들고 그 중 세개에 작은 화장실을 만드는 조각 조각 공사를 했답니다. 평소엔 자유롭게 쓰다가 손님이 오면 작업실과 안방만 저와 동생이 쓰고, 나머지 방은 게스트룸으로 쓰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독자님들을 초대해서 1박 2일짜리 작은 워크숍을 열거나 북토크를 해도 좋겠다 싶었죠. 살기 전엔 그랬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 상상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면 숙박업을 하겠다”라는 가벼운 심보로 시작할 일이 아니었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암담한 문제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만약 이곳에서 에어비앤비를 한다면 게스트에게 이런 당부를 해야 할 거예요.
첫번째 당부. "휴지는 최대 네칸, 물은 자주 내려주세요"
앞전의 편지에 제가 환경공학과를 다녔었다고 적었지요? 그래서 저는 휴지의 수용성에 대한 투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두루마리 휴지는 물에 녹는 시험을 거치고, 그 시험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분해되는지가 관건이거든요. 그래서 회사원 시절, 혼자 사는 동료들이 변기가 막혀 고생하고 있다고 할 때마다 혹시 “물티슈 넣었어요?” “뭐 빠트린 거 아니에요?”가 질문이었지, 절대 휴지 탓을 하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동료가 “아니에요, 휴지 때문에 막혔어요”라고 할 때도 절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내려오고서야 깨달았습니다. 휴지로도 배관이 막힐 수 있다는 걸요.. 발단은 친구가 놀러온 날이었어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갑자기 변기물 내려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 이었습니다. 뭔가 시원하게 내려가긴 하는데 새로운 물이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변기 레버를 아무리 눌러도 물이 채워지긴커녕 힘 없이 딸깍 거리기만 했습니다. 다른 방의 화장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손님방에서 한참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물었지요.
“미안한데.. 변기가 막혔어.. 혹시 변기에 뭐 떨어트렸어..?”
놀랍게도 친구는 저희 집에 놀러온 이후 단 한번도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담배 피러 나가며 대문 밖에서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쓰시는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을 써서요. 그럼 누가봐도 범인은 저잖아요? 그런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휴지만 썼거든요. 그날 오후 찾아 온 설비 사장님께서도 물으셨어요. 혹시 물티슈나 행주를 잘못 넣었거나 화장품 떨어트린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순간 무언가가 혼자 소리 없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속에 떨어진 것은 마땅히 떨어져야 했을 친구들, 민망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똥과 곤죽이 된 휴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막혔냐고요? 70평 마당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배관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배관은 물이 잘 내려가도록 약간의 경사를 만들어 지하에 심는데 저희 집은 마당이 넓다 보니 충분한 기울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묻혀진 거죠. 혹시 작가님 속도는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물리 법칙 기억 나시나요..? 덕분에 가벼운 질량인 물은 적은 기울기에도 신나게 정화조로 떠내려 갈 수 있었지만, 무거운 질량을 가진 친구들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속도를 잃고 끝내 그들의 여정을 마칠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특정 구간에서 맥 없이 멈춘 친구들은 다음 친구들과 만나 차곡차곡 쌓이며 단단히 배관을 막아버린 것이죠. 이 친구들은 다음날 설비 사장님께서 멀쩡한 시멘트 바닥을 뚫고 배관을 자르고, 하나 하나 퍼 올리고, 잘려진 배관을 다시 이어주고 나서야 여정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손님들이 오면 초면에 이렇게 말해야 할 거예요. "게스트님, 휴지는 최대 네칸, 물은 자주 내려주세요.." 솔직히 이 정도 부탁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변기 옆에 휴지통을 따로 두어도 되고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두번째 당부. "앗 물이 안 나온다고요? 죄송합니다 환불해 드릴게요"
불과 몇 주 전 일이었습니다. 머리에 신나게 비누칠을 하고 물을 틀었는데 물이 좀 불안하게 나오는 거예요. 최대한 빠르게 헹구고 나오려 했지만, 졸졸졸이었던 수량은 단 몇 초만에 몇 방울 대로 진입해 제 마음을 조급하게 했습니다. 그날은 비누칠을 수건으로 마무리한 최초의 날 이었어요. 보통은 씻기 전에 물을 틀어 보고 불안함을 감지하는데 그날은 제가 안일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아직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선 날이 가물면 그야말로 직격탄입니다. 작년 이맘 땐 무려 3주째 제대로 된 물이 안 나오기도 했어요.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고 나오긴 하는데 흙탕물이었죠. 평소엔 깨끗한 물이 나오지만 날이 가물면 물탱크 바닥에 있는 물이 그대로 나오는지 갈색이더라고요. 변기물을 내렸는데도 누가보면 왜 물을 안 내렸냐고 오해하고 화낼 수 있을 정도로요. 그렇게 물이 안 나올 때면 애써 지은 집업실을 두고 본가에서 지내는데요. 가뭄과 상관없이 콸콸 나오는 깨끗한 물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져요. 하천과 계곡은 말라 비틀어졌는데, 도시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깨끗한 물이 나오는 걸 보면 비정상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정상인 곳에서 살 수 있냐면 그건 또 아니에요. 하얬던 수건과 셔츠가 세탁하고 나면 누래지니까요. 큰 맘 먹고 산 비싼 싱크대 수전도 필요 없어졌어요. 세탁기에도, 싱크대에도, 샤워기에도, 세면대에도 정수 필터가 필요해졌거든요.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떠올리며 룰루랄라 시골로 놀러 온 손님이 갈색 필터를 보고 맘 놓고 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역시 에어비앤비는 무리에요. 그래도 물이 콸콸 잘 나오는 때엔 손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그 역시 불가능 한 이유는..
세번째 당부. 추워요. 춥습니다.
원래 있던 벽체에 단열재를 덧대어 벽 두께가 25cm를 훌쩍 넘도록 단열 공사를 열심히 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춥습니다. 윗집이나 아랫집이 따뜻하면 보일러를 안 틀어도 기본 온도가 유지되는 아파트나 빌라와는 달리, 혼자 모든 추위를 감내하는 단독 주택은 아무리 단열재를 잘 써도 한계가 있습니다. 작가님 지난 편지에서 제가 든든하게 기름을 가득 넣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렇게 두둑히 기름을 넣은지 딱 한달인 오늘, 야속하게도 반이나, 무려 40만원어치가 닳았습니다. 연말이라 약속이 있어 서울을 오가느라 본가에서 지내는 바람에 집업실은 10도로 맞춰 두고 나가 있는 날이 많았고, 들어온 날에도 최대 21도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심지어 21도는 친척들이 놀러 온 날의 온도였고 보통은 자기 전에 안방 하나 19.5도를 맞춰 놓고 다른 방은 다 10도로 맞춰두고 자요. 일어나면 보일러를 가장 먼저 끄고 난로에 물 주전자를 올려 뜨거운 공기로 온도를 빠르게 올리고, 밥솥에 쌀을 앉히고 요리를 해서 집안 온도를 높이는 절약 정신을 십분 발휘했는데도 여지 없이 반이나 닳았더라고요. 지난 며칠 간 영하 16도로 떨어질 정도로 너무 춥긴 했어도, 기후 위기로 영상 20도를 웃돈 것 역시 12월이었던 걸 떠올리면 참 야속할 정도예요. 그러니 게스트들이 와서 춥다고 최대 온도로 설정해놓고 있으면 수지타산이 안 맞아 에어비앤비는 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이런 중대한 연유로 에어비앤비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덧 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상적으로 살고 있어요. 요즘 같이 추운 날 들어가자마자 요리를 해서 온도를 높이는 일도, 청소기를 돌려서 체온을 높이는 일도, 휴지를 아껴 쓰는 일도, 물 줄기를 보고 샤워 타이밍을 가늠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작은 일도요. 최강한파가 덮쳤던 지난 주, 별채의 싱크대 수전을 돌려보니 단단히 얼어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부랴부랴 전기 열선을 가져와 겹치지 않게 감아 주었어요, 야외의 부동전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잠가주었고요. 그 뿐만인가요. 비가 오면 배수로와 수채구멍, 지붕 물동이에 촘촘히 쌓인 낙엽을 정리하고, 눈이 오면 발자국이 닿기 전에 쓰는 등 수 많은 루틴이 계절에 따라 추가 되지요. 쓰고 보니 아무리 적응을 했어도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주택에, 그것도 상하수도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골의 주택에 사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생각없이 한 행동이 집안의 어느 곳에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겨울철 동파를 대비하기 위해 전기 열선을 구비할 필요성을 아는 것, 지금은 마늘과 양파가 겨울잠을 자는 계절이란 걸 아는 것, 설비 사장님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 사실 그 어떤 것보다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지식들이잖아요. 물과 온도처럼 삶을 영위하게 위해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없이 낭비하던 것들을 아낄 수 있어 좋고요. 삶을 위한 기반 시설이 너무 잘 되어있던 조직과 체계, 도심 안에 있을 땐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던 단어와 쓰임새들을 알게 되어 기뻐요. 조직과 체계, 도심의 안락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 할 때, 이런 지식들을 몰라 발이 붙잡힌다면, 스스로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내어주지 못할 테니까요. 물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진 못하겠지요. 하지만 해결책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도 나름의 해결책 아닐까요? 참고로 저는 그래서 웬만하면 설비 사장님과는 척을 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설비 일 자체가 고되어서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지방 소도시엔 몇 분 계시질 않으니 한분이라도 척을 지면 큰 일이니까요. 작가님이 "금산 언 수도 해빙" 이라고 쳤을 때 나온 검색결과가 대부분 설비 사장님 연락처 아니었나요? 수도가 얼어도, 뜨거운 물이 안 나와도, 변기가 막혀도, 설비 사장님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다 알고 계시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파가 덮친 겨울의 산타 할아버지는 다른 이가 아닌 주말 밤낮없이 동파된 집에 방문해주신 설비 사장님일 것 같아요. 어느덧 크리스마스도 지나 새해를 목전에 두고 있네요. 저 역시 작가님 못지 않은 기막힌 사건으로 편지를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토록 적나라하게 써버려서 어찌 읽힐 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작가님의 앞선 편지가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도 쓰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전 많은 책을 낸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신기했거든요? 제 안에 있는 이야기는 지난 두 권의 책에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난 여섯 번의 편지들을 돌아보니 혼자서는 갖고 있으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빼곡하게 적어 내려갔더라고요. 그건 비슷한 환경에 살며 서로의 처지를 너무도 잘 아는 작가님이어서, 부동전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작가님과 주고 받는 편지였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올해 잘 한 일 중에 하나는 계절 편지를 시작한 일일 거예요. 저도 몰랐던 이런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게 먼저 손 내밀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해요. 올 연말엔 동파와 선잠과 설비 산타의 방문 없이 소망이와 마냥 따뜻하길 바랄게요. 내년에도 변함없이 작가님과 웃기고 슬프고 재밌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단 사실에 기뻐요. (식물산업보호기사님 덕분에 한층 더 다채로울 예정!) 우리 새해에도 건강히 편지 주고 받아요.
해피 뉴 이어!
2023년 12월 27일
귀찮 드림.